소재/참신함 ★★★☆☆ (3.0)
각본/스토리 ★☆☆☆☆ (1.0)
캐릭터/입체성 ★★☆☆☆ (2.0)
배우 연기력 ★★★★☆ (4.0)
연출/편집 ★★★★☆ (4.0)
여는 문
19년 11월에 시즌 1을 시작으로 해 시즌3 22년 8월에 종영한 애플TV 첫 SF 시리즈다. 참고로 애플TV 플러스에서 제작한 SF 시리즈는 씨(2019)와 어메이징 스토리(Amazing Stories, 2020) 단 2개이다. 플랫폼 초기에는 SF물로 사업전략을 짰으나 다큐멘터리로 전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씨: 어둠의 나날 시리즈는 애플TV가 야심차게 준비한 첫 SF물로서 어떤 의미와 의도가 담겨있는지를 생각해보며 시청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다.
감독은 프란시스 로렌스에 각본은 스티븐 나이트다. 프란시스 로렌스는 영화 콘스탄틴(2005)으로 유명한 영화 감독이다. 그 외에도 나는 전설이다(2007), 헝거 게임(2014) 등의 어두운 세계관에서 강한 에너지를 다루는 작품을 주로 제작했다. 사실, 로렌스는 영화감독으로 활동하기 전에 뮤직 비디오 제작을 했는데, 푸른끼가 도는 창백한 톤에 강렬한 색채가 그의 작품적 특징인데, 아포칼립스 물에 잘 어울린다. 스티븐 나이트는 2000년부터 꾸준히 각본을 써 온 사람인데, 어떤 인물의 전기 혹은 소설 원작의 영화화를 주로 맡았다. 그런 의미에서 애플TV에서 이 두 사람을 고용해서 만든 작품이라면 전형적으로는 아포칼립스 물에서 어떤 영웅적 인물의 전기적인 특징을 지니는 것으로 상상할 수 있겠다.
늘 먹던 맛, 비범한 능력으로 가정을 수호하는 아빠
실제로 어둠의 나날 시리즈는 현존하는 인류 문명이 붕괴하고 난 뒤를 다루는 세계관으로, 포스트 아포칼립스 물이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는 보통 부족한 자원과 열악한 환경이 펼쳐지고, 그 상황에서 인간들의 욕망과 갈등을 다루면서 인간성에 관련한 질문을 던진다. 잘 알려진 작품으로는 매드 맥스(2015), 설국열차(2013), 워터월드(1995) 등이 있는데, 이 드라마는 워터월드에 더 가깝다.
시력을 잃은 대신 바이러스로부터 살아남은 인류에게 매우 희박한 확률로 시력을 가진 아이들이 태어나게 된다. 어둠의 나날은 이 시각이라는 육체적 특징에 대한 등장인물들의 욕망을 다루며 드라마가 진행된다. 바바보스라는 뛰어난 전사(warrior)를 중심으로 스토리가 진행되는데, 바바보스는 아버지로서 시각을 가진 아이들을 보호하고, 그들이 살아갈 세상이 더 나은 모습이 되도록 힘쓰는 캐릭터다.
시각이 없으면 대화할 때 서로 바라볼 필요가 없다 (씨야무비, 2023)
가족을 지키는 아버지, 라는 테마는 테이큰 이후 아주 익숙한 맛이다. 가정이나 국가의 안보를 수호하는 영웅들에 대한 영화는 진부하지만 언제나 먹히는 설정이다. 이 시리즈 또한 다르지 않다. 앞을 보는 사람들이 박해받는 시대에 아이들을 한 국가로부터 보호하는 것은 어지간히 뛰어난 능력을 가진 것이 아니고서는 힘들기 때문에, 바바보스는 전투능력, 생존능력, 체력 등 전사로서 전설적인 면모를 보인다. 하지만 이 강자의 '희생'과 '헌신'을 통해 무엇인가에 대해 새로운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새로운 시대를 여는 초석으로서의 역할이 전부였다.
시각이라는 감각에 대하여
2020년에는 장애인을 사회의 일원으로서 존중하는 것을 지지하는 루더만 가족 재단의 인장(Ruderman Family Foundation Seal of Authentic Representation)을 받을만큼 어둠의 나날 시리즈는 시각장애인과 저시력자를 적극적으로 기용했다. 더 나아가, 시각장애의 포용과 신중한 묘사로 호평을 받았다고들 하지만 이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시각장애인 배우들을 섭외하였을 뿐만 아니라 맹인 문명을 연출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겠지만 수준 미달이라는 뜻이다.
제작진의 자부심인 돌무더기 전쟁 씬 (씨야무비, 2023)
가장 처음 접하는 전투 씬은 돌무더기 절벽 전투다. 이 시리즈는 시각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한다. 인류가 시각을 잃고 나서 시간이 한참 지나고나서, 어쩌면 다른 감각기관이 발달할 수 도 있었을텐데, 신체적 변화에 대한 전제나 가정이 없는 것은 아쉬웠던 부분이다. 이 시리즈의 전제는 시각이 돌아올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신체에 큰 변화는 주지 않되, 시각이 부재는 일반적인 전투와 어떻게 다른지를 상상해보는 수준이었다.
따라서, 비교해 볼 수 있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고안된 시각장애인을 위한 디자인이나 설계 정도가 되겠다. 내가 상상한 것은 맹인들끼리 벌이는 역사 속의 전투 형태가 아닌, 청각이나 후각을 고통스럽게 하는 무기가 전투나 영역다툼에 사용되는 설정이었는데, 아니어서 아쉬웠다. 다른 감각을 공격하는 무기들이 폭탄보다는 작중에서 현실성 있는 소재가 아니었을까.
맹인들의 활동을 우리가 '관찰'하는 연출이 주를 이루었는데, 이 부분 또한 아쉬운 부분이다. 욕심을 좀 냈다면 더 감각적인 연출을 할 수 있었을 것 같다. 바바보스 등 등장인물의 시점에서 전투나 여행길에 대한 느낌을 살렸으면 어땠을까? 그들이 암흑에서 전투를 느끼는 방식이나 감정이 더 와닿는 방식이 정말 없었을까? 이러한 이유로 제작진의 맹인 문명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고 주장해본다.
신분증으로 고안 된 소리나는 반지 (씨야무비, 2023)
어둠의 나날은 시각이라는 감각을 그리워하는 인간에 대한 작품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각이라는 감각의 부재는 많은 결핍을 낳았을 것이 분명한데, 그러한 결핍에 대한 묘사나 가정이 구체적이지 못하다. 예를 들어, 생각보다 등장 인물들의 외양이 말끔하다. 세안이나 양치를 할 때에도 보이지 않는 곳은 꼼꼼히 닦기 어렵다. 일반 색각자들도 가지고 있는 고충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위생 측면에서의 설정이 부족한 것 또한 아쉬웠다. 그 외에는 흔들면 특정한 소리가 나는 반지를 신분증으로 사용하는 등의 설정은 흥미로웠으나, 맹인 문명의 것이라기에는 비현실적인 현대적인 의복 디테일과 피어싱 등의 신체 장식, 헤어 스타일 등이 모두 현실적이지 못했다.
닫는 문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남들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이 얼마나 더럽고 추악해질 수 있는지는 비슷한 작품은 눈 먼 자들의 도시(2008)에서 잘 나타난다. 눈 먼 자들의 도시는 시각의 사각지대에서 자행되는 잔혹함에 초점을 맞춘 작품인데, 사회 질서와 법이 닿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조명한다.
물론, 어둠의 나날 시리즈 또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물이기에, 무법지대에서 인류 문명을 재건하고자 하는 스토리가 메인이다. 시즌 3편에서 등장인물들은 그 클라이막스를 향해 갈등을 고조시킨다. 스토리 상, 등장인물들의 돌발 행동은 시즌을 이어가기 위한 노력이면서, 사회 질서와 법이라는 것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 것인지에 대한 고증이기도 하다. 이 시리즈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멸망한 인류에게 법과 처벌을 '개인의 선택' 쯤으로 격하시키고, 이 엄한 규율이라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인지 되묻는 각본이다. 인류 문명이래 왕권 국가 통치체제에서 반역이라는 것은 가장 엄하게 취급해왔다. 확실히, 법과 규칙을 따르는 것은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 사치스러운 개념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스토리다.
분명, 어둠의 나날 시리즈는 좋은 시도를 많이 했다. 맹인 문명에 대한 상상을 담은 SF 시리즈로서 슈퍼 대디와 새로운 문명의 태동을 이야기하는 것은 흥미롭다. 하지만, 시각에 대한 깊은 고민이 부족하다는 것은 작품성을 전반적으로 떨어트린다. 참고로 콰이어트 플레이스 (2018)는 청각에 대한 설정이 아주 훌륭한데, 우리가 강제로 청각에 의존해야 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아주 잘 보여주는 공포영화다. 후대 작품임에도 인류가 시각을 잃고 청각에 의존하게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에 대한 검토가 부족한 것은 시리즈를 보는 내내 아쉬웠다.
reference
(씨야무비, 2023) 씨-어둠의 나날 시즌1~시즌3 몰아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oR-PWy-GAF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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