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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s/as is a tale

감각 과학자의 ‘더 글로리(2023)’ 리뷰 (2.8)

by 김바림 2024. 12. 2.

 

 


소재/참신함 
★★★☆☆ (3.0)

각본/스토리 ★☆☆☆☆ (1.0)

캐릭터/입체성 ★★☆☆☆ (2.0)

배우 연기력 ★★★★☆ (4.0)

연출/편집 ★★★★☆ (4.0)

 


 

 

여는 문

김은숙 작가는 파리의 연인(2004), 시크릿 가든(2010), 신사의 품격(2012), 태양의 후예(2016), 미스터 선샤인(2018) 등 굵직굵직한 작품을 쓴, 로맨스 코미디에 특출난 사람이다. 주연 송혜교와는 태양의 후예 이후 두 번째 작품으로, 여자가 복수하는 이야기가 흥행불패라고 굳게 믿고 있는 김은숙 작가(온에어, 2008)의 안전한 시도이기도 하다.

실제로 복수극은 찍었다 하면 국내에서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는 드라마 장르이다. SKY 캐슬(2019), 부부의 세계(2020), 펜트하우스(2021), 재벌집 막내아들(2022)는 모두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린 가해자를 피해자가 직접 응징하는 내용의 자극적인 스토리 전개로 흥행에 성공했다.

더 글로리는 피해자의 사적 제재를 다룬다는 점에서 흥미로우며, 학교 폭력을 소재로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자극적이다. 제작 발표회에서 김은숙 작가는 자신의 고등학생 딸과의 대화에서 이 영감을 얻었다고 했는데(생생스타, 2022) 부모의 입장에서 '지옥'이었던 그 격한 감정들이 화상 자국, 성폭력을 담은 연출로 이어진다. 물론, 이 연출은 비판의 여지가 충분하다. 비난받는 학폭(학교폭력) 관련 영화들이 그렇듯, 자극성에 중점을 두어 이목을 끈 부분이기 때문이다. 잔인한 장면일수록 관객이 가해자를 비난하기 쉬워지며, 이 때 '폭력'은 관객들이 사냥감을 조준하는 도구로 소비된다. 요즘에는 간접적으로 폭력을 표현해 피해자의 고통을 다루는 방식에 주의한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비난받을만 한 부분이다.

(뉴스원, 2023)
 

하지만, 이 분명한 연출이 현실에 기여한 부분도 있다. 연예계, 정계, 방송계 등 학폭 논란에 대한 폭로가 이어졌고(스포츠경향, 2023), 가해자가 비난받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인사이트, 2023). 확실히 대중들은 학폭에 더욱 민감해졌고, 학폭에 이제 강경하게 대응한다. 언론, 커뮤니티, SNS 등에서 학폭 논란이 있을 때면 더 글로리의 밈, 표현 등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바로잡기와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 좋은 재료를 가지고 이것밖에..?

그런 의미에서, 작년 상반기 1위를 차지했고(스타투데이, 2023), 포브스 선정 2023년 베스트 한국 드라마(Forbes, 2023)가 된 '더 글로리'는 전대 복수극 드라마들과 마찬가지로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1990년대와 2010년대를 오가며 영화 '기생충' 못지 않게 빈부격차와 당시 사회 모습을 잘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김은숙 작가의 손끝에서 탄생한 주인공들의 그 매력 넘치는 캐릭터성은 충분한 이유가 된다.

하지만, 더 글로리를 단지 '학교폭력으로 인생이 망가진 아이가 인생을 걸고 복수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이야기'이고 '훌륭한 작품'이라고 말하는 것은 상당히 불편하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더 글로리의 주제는 '복수'가 아니다. 더 글로리의 주제는 '인생이 망가진 한 여자가 다음으로 나아가기 위해 내딛는 걸음'이다. 그 한 걸음이 복수였을 뿐이다. 파트1과 파트2를 통틀어 많은 장면에서 동은이 복수를 실행하는 동안 느끼는 감정선을 다루고 있으며, 이를 통해 그녀의 삶이 17년 전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학교폭력을 당하고, 가해자가 모든걸 가졌을 때 무너뜨리기 위해 17년동안 준비했다. 이후 초등학교 교사로 등장, 과거의 일을 자꾸 들춰내 가해자 주변의 사람들을 모두 17년 전의 사건으로 집어 넣고 결말을 맺는다. 회귀하지 않고 '노오력'을 해서 이루어 낸 복수라는 점에서, 유행에 편승하지 않았다. 적어도 현실성과 개연성을 살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 것이다. 훌륭하다.

또한, 연출과 설정이 탄탄하다. 예를 들어, 하도영이 재벌집의 혼외자이며, 능력으로 인정받았다는 설정을 유추하기에 충분한 장면들이 있다. 박연진이 시어머니와 반목하는 부분에서, 골프장 회원권 때문에 전재준에게 시어머니에 대해 소개하는 장면 등 섬세하게 장면이 배치되어 있어, 이를 찾아내는 재미가 있다.

 


 

 

복수의 비현실성에 대하여

작품 전체의 주제인 '문동은의 복수'는 비현실적이며, 기적에 가깝다. 신의 심판처럼 기이하다. 한 치의 앞도 예측할 수 없이, 홀린듯이 보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천벌에 가까운 복수는 역으로 '현실에서 복수란 것이 얼마나 불가능한지'를 체감하게 한다.

먼저, 피해자인 문동은은 슈퍼맨이다. 투지와 집념의 화신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능력과 돈벌이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문동은은 작중에서 손에 피를 묻히지 않는 계획을 세운다고 했다. 그것은 바로 그 사람이 어떻게 행동할지 예측하고, 그 행동반경을 유추하는 방식이다. 매 화 마다 그 모든 가능성을 고려하는 주인공이 정말 뛰어난 인간 분석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더 글로리를 본 사람이라면, 모두가 문동은이라는 사람은 17년동안 복수에 필요한 돈을 모을 만큼 의지가 강하며, 재벌 기업 총수인 유부남을 꼬실 수 있을 정도로 전략적이고 머리가 좋고, 그것을 스스로 실행할 수 있을만큼의 외모와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에 동의할 것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두 가지를 느낄 수 있다. 내가 꿈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는 나의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것과, 내가 뛰어난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은 자신들에게 그런 능력이 없음에 좌절하고, 가해자들은 더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스토리다.

그럼에도, 이렇게 뛰어난 문동은이 한 일은 주변인들의 '마음'을 얻어내는 것이 전부였다. 돈을 열심히 벌어서, 주변 사람들을 분석하고 다가가서 두드리고 마음을 얻어낸 것. 결국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것이다. 허무하지 않은가? 그래서, 가장 든든한 조력자인 병원장 아들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던 복수라는 점에서, 복수라는 것이 얼마나 요원한 일인지 한 번 더 확인사살을 해준다.

덧붙이자면, 작중에서 능력있고 힘있는 우리의 조력자는 칼춤 추는 망나니, 로 표현되었지만 김은숙 작가의 전작인 파리의 연인이나 태양의 후예 등에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백마 탄 왕자님'을 부르는 다른 별명일 뿐이다. 로맨스를 아예 배제했다면 어땠을까, 많이 아쉬운 부분이다.


 

 

결말에 대한 아쉬움

결말도 상당히 아쉽다. 학폭 4인방은 각각 천벌을 받는 것으로 결말을 맺는다. 손명오는 죽음으로, 최혜정은 말을 하지 못하는 언어 장애인이 되는 것으로, 전재준은 두 눈이 멀어버려 시각 장애인이 되는 것으로, 그리고 박연진은 감옥에서 정신 장애를 갖는 것으로 끝이 난다. 후천적인 장애를 징벌로 연결한 사고방식이 불쾌했다. 장애를 천벌의 결과물로 사용하다니.. 이것은 사회적으로 결코 바람직하지 않을 뿐더러 이런 인식을 공유하고 있는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함께걸음, 2023). 이 결말이 선천적, 후천적 장애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지 않는다고 감히 변명할 수 있을까?

한가지 더 아쉬운 점이 있다. 드라마에서 가해자들은 '학교폭력을 휘두르는 자극적인 연출'을 통해 완벽한 악역으로 공감대를 형성했으며, 악인으로 정의된다. 그리고 완벽하게 악인인 이들이 모두 '벌'을 받으며 끝이 난다. 그렇다. 2023년에 개봉한 더 글로리는 놀랍게도 권선징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고대소설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프레임에서 쓰여졌고, 결말지어졌다. 국민 교육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던 조선시대나 개화기도 아닌 사회에서, 여전히 권선징악 수준의 작품이 판을 치고 돌아다니는 것은 상당히 충격적이다.

김은숙 작가는 더 글로리 제작발표회에서 가해자들의 진심어린 사과와 반성을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며, 자신의 절절한 감정을 고백했다 (생생스타, 2022). 하지만, 결국 작품에는 가해자들의 진심어린 사과와 반성은 포함되지 않았다. 현실과 다르지 않은 가해자들의 태도와 비현실적인 가해자들의 몰락은, 그런 의미에서 너무나도 가벼운 결말이다. 겨우 이런 결말이 제작진들이 고민한 '피해자들의 영광'에 대한 답이 되어서는 안됐다.

더 글로리 PD가 학폭 가해자였다는 소식은 이 결말에 대한 아쉬움을 배가시킨다 (한겨레, 2023). 심지어 주연 배우도 학폭 의혹이 제기되었으며, 이에 대하여 '나 정도는 가해가 아니잖아'라고 변명했다 (중앙일보, 2023). 알고 나니 더 불쾌해지는 결말이다.

 

 

 

닫는 문

유튜브, '전재준 카니발' 관련 쇼츠

 

 

물론, 작품성은 분명하다. 작가의 필력은 훌륭하며, 그 결과 작중의 캐릭터성이 엄청나다. 전재준, 박연진을 포함해매력적인 캐릭터들은 훌륭한 연기력을 통해 펼쳐졌으며,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악역들의 대사는 밈이 되어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페이스북, 2023)

 

이 작품의 흥행은 김은숙 작가가 정확하게 대중의 입맛을 알고 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몇몇을 제외하면 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해 몰입에 기여했으며, 각 캐릭터는 매력적이었다. 연출과 편집이 참 깔끔했다. 학교 폭력을 소재로 사용, 미화하거나 축소하지 않고 잘 표현했지만 전개와 결말이 많이 아쉽다. 그리고 불쾌하다.

 


 

 

참고 자료 >>

(스타투데이, 2023) ‘더 글로리’ 3주 연속 전세계 1위...끝나지 않은 인기 https://www.mk.co.kr/news/broadcasting-service/10698838

(Forbes, 2023) The 20 Best Korean Dramas Of 2023 https://www.forbes.com/sites/joanmacdonald/2023/12/15/the-20-best-korean-dramas-of-2023/?sh=69f32b33278f

(생생스타, 2022) 김은숙 작가의 신작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 제작발표회 https://youtu.be/vi3FKOy4Cno?si=U5ieyX9QB-rSBJ3z

(스포츠경향, 2023) '더 글로리'가 몰고 온 연예계 '학폭 바람' https://sports.khan.co.kr/entertainment/sk_index.html?art_id=202303151656003&sec_id=540201

(인사이트, 2023) 정순신 아들 학폭 판결문 보니...누리꾼들 "'더 글로리'보다 더한 현실" https://www.insight.co.kr/news/430748

(뉴스원, 2023) "연진이 닮았다"…학폭 유튜버 하늘 '더글로리' 언급 계정 줄차단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421&aid=0006579281

(한겨레, 2023) ‘더 글로리’ 안길호PD, 학폭 인정…“상처받은 분들께 용서 구해”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083233.html

(중앙일보, 2023) '더 글로리' 김히어라, 일진클럽 의혹에 "폭행 안 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90425#home

(함께걸음, 2023) 장애가 왜 형벌인가요? https://www.cowalknews.co.kr/bbs/board.php?bo_table=HB21&wr_id=105

(페이스북, 2023) 인터넷 커뮤니티에 나타난 문동은 https://www.facebook.com/ipdukhalrae/posts/545432594242032/?paipv=0&eav=AfYpUX-KQ2Ys57HOIT-mGSmGCdKMZqk5_JY32xP4fIoFZADIV3dhuSbsTKhAB4cOHQY&_rd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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